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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이폰
5년간 써 오던 블랙베리를 마지막으로, 다시 아이폰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블랙베리를 쓸 일은 없을 것 같고 블랙베리의 운명도 아마 여기까지인 듯싶다. 오랜만에 최신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나니 삶의 질이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어느덧 스마트폰 생태계는 한층 더 발전했고, 이제 좋은 스마트폰은 사치재가 아니라 필수재에 가까워졌다. 게다가 맥북·아이패드·아이폰·애플 워치로 이어지는 애플 패밀리를 완성하고 나니 이렇게 해야만 온전히 쓸 수 있는 앱들을 다시 만나게 된 점도 무척 반갑다. 그중에서 최고의 앱 2가지를 추천해 본다.
Things by Cultured Code

나는 2008년에 처음으로 Things 첫 번째 버전을 구매했다. 이후 최신 버전인 3까지 빠짐없이 구매해 온 충성 고객이다. 아이폰에서 안드로이드로 건너갈 때 주저한 이유도 Things 때문이었는데, 왜냐하면 이 회사는 윈도우는커녕 안드로이드 버전조차 끝내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드로이드에서는 Microsoft To Do 같은 앱(예전 Wunderlist)을 함께 써야 했는데 무척 불편했다. 끝까지 To Do로 넘어가지 못한 채 두 앱을 병행하며 버텼다. 아이폰으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도 Things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처음 만난 뒤로 17년간 업데이트가 나올 때마다 결제해서 쓰고 있다. 여전히 최고의 GTD 앱이고(이제 GTD라는 용어는 잘 쓰이지 않는 것 같지만) 내 아이폰에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필수 앱이다. 그리고 내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함께하는 앱이다.
Bear by Shiny Frog
Evernote에서 시작된 ‘뇌수의 분실’은 Notion을 거쳐 Obsidian 등으로 다양해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Notion의 블록 단위 편집이나 Obsidian의 그래프 뷰는 메모의 본질에 어울리는 방식은 아니었다. 좋은 메모 앱이라면 완성도 높은 동기화와 함께 글쓰기에 좋은 환경까지 제공해야 하는데 이 둘을 모두 갖춘 앱은 흔치 않았다. 그런데 Bear는 Markdown을 중심으로 매우 훌륭한 글쓰기 환경을 제공한다. Evernote의 불완전한 편집 기능, Notion의 느리고 불편한 블록 단위 편집, Obsidian의 어색한 글쓰기 환경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일단 앱 자체가 가볍고 깔끔하고 미려하다. 여기에 애플의 iCloud를 활용한 동기화도 훌륭하다. 물론 이를 위해 매년 결제해야 하지만 가격은 Evernote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좋은 도구는 습관을 바꾼다. Notion을 쓸 때는 불편해서 글을 거의 쓰지 않고 저장소 용도로만 활용했는데, Bear로 바꾸자마자 다시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무엇보다 일지 중심의 메모장 용도로 제격이다. 건강 기록, 주식 거래 내역, 구매할 책 목록, 세차 기록, 출장 준비물처럼 꾸준히 업데이트해야 하는 기록들을 매일 Bear에 남기고 있다. 급한 메모도 문제 없다. 애플 기기라면 어디서든 입력이 가능하고 최근에는 웹 버전도 제공한다. 긴 글은 주로 맥에서 쓰고 밖에서는 아이폰으로 내용을 확인한다. 하지만 Bear 역시 Things와 마찬가지로 윈도우나 안드로이드는 지원할 생각이 없다. 안드로이드를 쓰는 동안 Bear를 쓰지 못하는 점이 내내 아쉬웠는데 아이폰으로 건너오자마자 바로 18,000원을 내고 유료 구독을 재개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메모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두 앱에는 공통점이 있다. 각각 독일과 이탈리아 유럽에서 개발한 앱이라는 점이다. 대규모 웹 서비스가 중심인 미국 회사와 달리 유럽에는 아직도 데스크톱 앱을 중심으로 하는 작은 공방 같은 회사가 꽤 있다. Things와 Bear가 대표적이고, LaunchBar를 만든 Objective Development 같은 회사도 그렇다. 오스트리아 회사인 이곳은 무려 30년 가까이 한 제품을 꾸준히 개발해 오고 있다. Things도 내가 첫 번째 버전을 구매한 지 벌써 17년쯤 됐고, Bear도 9년이 넘었다. 1년이 멀다 하고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IT 업계에서 한결같은 꾸준함을 보여주는 유럽산 제품들은 그야말로 장인 정신이란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앞으로 Things와 Bear가 얼마나 더 오랫동안 새 버전을 내놓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장인 정신을 이어간다면 앞으로도 꾸준히 구매할 생각이다. 이미 17년, 9년을 함께해 왔다. 이 인연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나 또한 기대가 크다.

